내가 글 쓰는 방법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책 세 권을 썼다. 책 쓰는 동안 출판사 편집자와 문장 고치는 연습을 많이 했다. 그래서 보통 공돌이보단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글을 고치기 전에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쓴다. 마치 말할 때처럼 생각을 글로 내 뱉는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고친다. 긴 문장을 짧게 끊는다. 할 수 있는 한 “주어+동사+서술어"로 문장을 만든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고친다. 앞 뒤 문장을 반드시 연결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는 없어도 된다.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면 통채로 지운다.

불필요하거나 위치가 이상한 조사(‘을를이가’)를 고친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지운다. 이 작업만 해도 문장을 꽤 리듬감있게 만들 수 있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른다. 우리가 평소에 읽는 책이나 글 속에서 계속 수동태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문장을 수동태로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잘 안되면 문장을 고친다. 어색한 시제도 고친다.

이상한 한자어 단어나 꼭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나도 모르게 쓰는 한자어가 많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말 단어로 바꿔 쓸 수 있다.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의’는 없어도 된다. 이건 우리말에 뭍은 일본어 찌꺼기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단순히 ‘의’를 쓴 자리에 다른 조사를 쓰는 정도로 문장을 고치기 어렵다. 문장 구조를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

아래는 이 글을 쓰는 과정을 순서대로 재현했다.
보통 나는 글을 한 번에 고친다. 순서대로 적용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서 해 봤다.

처음 쓴 글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책을 세 권 썼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 편집자와 문장을 고치는 연습을 어느 정도 했기에 그래도 다른 공돌이보단 문장을 잘 쓴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 쓰듯이 쓰면 중언부언하기 마련이다.

나는 보통 글 쓸 때,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간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마치 말하는 것처럼 그냥 쭉 쓴다. 일단 생각을 글로 내 뱉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말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겼을 때 훌륭한 문장이 바로 나오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글의 초안을 쓸 때는 좋은 문장을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생각을 글로 다 내 뱉고 나면 첫 번째 수정을 한다. 여기저기 보이는 긴 문장을 짫게 끊는다. 요즘은 애초에 문장을 짧게 끊는 연습을 많이해서 그런지 잘라야할 긴 문장이 없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래도 보이는 긴 문장은 모조리 자른다. 웬만해서는 “주어+동사+서술어” 딱 이렇게 단일 구성요소만 나오게 문장을 자른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같이 수정한다. 매번 접속사를 문장 사이에 넣는 것보다 의미상 인과를 정확히 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를 지워 버리는게 더 낫다. 또한 불필요한 문장은 통채로 지운다.

중간 중간 ‘을를이가’가 불필요하게 들어가 있거나 위치가 적당하지 않으면 지우거나 옮긴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삭제한다. 이 작업만 해 줘도 문장이 꽤 리듬감있게 변한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그런데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나긴 교육과정 속에서 꽤 많은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우리는 알게모르게 수동태 문장에 계속 노출되고 나도 모르게 수동태 문장을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그리고 기이한 한자어 단어나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한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흔히 문자 쓴다고 하는 그런 말말이다. 나도 꼴에 식자라고 그런 말을 그저 재미로쓰기도 한다. 말 할 때는 재미로 쓸지 몰라도 글에서는 없애는게 맞다.

마지막으로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의’는 우리말에서 없도 문장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엄연한 일본어의 잔재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의’를 없애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조사로 바꾸는게 아니라 문장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

문장을 자른다.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책을 세 권 썼다. 그 과정에서 출판사 편집자와 문장을 고치는 연습을 어느정도 했다. 그래서 보통 공돌이보단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한다.

나는 보통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처럼 쭉 쓴다. 일단 생각을 글로 내 뱉는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말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겻을 때 그 문장이 훌륭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을 신경쓰지 않는다.

생각을 글로 다 뱉어 낸다. 그리고 첫 번 째 수정을 한다. 여기저기 보이는 긴 문장을 짧게 끊는다. 요즘은 애초에 짧은 문장을 쓴다. 연습을 많이 해서 그렇다. 그래도 긴 문장은 여전히 많다. 보이는 긴 문장은 모조리 자른다. 웬만해서는 “주어+동사+서술어” 딱 이렇게 단일 구성 요소만 나오게 문장을 자른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같이 수정한다. 의미상 인과를 정확히 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는 없어도 된다.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면 통채로 지운다.

불필요하거나 위치가 이상한 조사(‘을를이가’)를 지우거나 옮긴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삭제한다. 이 작업만 해 줘도 문장이 꽤 리듬감있게 변한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기나긴 교육과정 중에 우리는 꽤 많은 책을 읽는다. 그 책들 속에서 계속 수동태 문장을 접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수동태를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잘 안되면 문장을 수정한다.

그리고 기이한 한자어 단어나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한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나도 모르게 쓰는 한자어가 꽤 많다. 그리고 그 한자어들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의’는 우리말에서 없도 문장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엄연한 일본어의 잔재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의’를 없애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조사로 바꾸는게 아니라 문장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

조사와 수식어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책 세 권을 썼다. 그 과정에서 출판사 편집자와 문장 고치는 연습을 꽤 했다. 그래서 보통 공돌이보단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한다.

나는 보통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처럼 쓴다. 일단 생각을 글로 내 뱉는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말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겻을 때 그 문장이 훌륭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수정을 시작한다. 긴 문장을 짧게 끊는다. “주어+동사+서술어” 딱 이렇게 단일 구성 요소만 나오게 문장을 자른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수정한다. 의미상 인과를 정확히 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는 없어도 된다.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면 통채로 지운다.

불필요하거나 위치가 이상한 조사(‘을를이가’)를 고친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삭제한다. 이 작업만 해 줘도 문장이 꽤 리듬감있게 변한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기나긴 교육과정 중에 우리는 책을 꽤 많이 읽는다. 그 책 속에서 계속 수동태 문장을 접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수동태를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잘 안되면 문장을 수정한다.

기이한 한자어 단어나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한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나도 모르게 쓰는 한자어가 많다. 그리고 그 한자어들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의’는 우리말에서 없도 문장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엄연한 일본어의 잔재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의’를 없애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조사로 바꾸는게 아니라 문장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

수동태 없애기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책 세 권을 썼다. 그 과정에서 문장 고치는 연습을 출판사 편집자와 많이 했다. 그래서 보통 공돌이보단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한다.

나는 보통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처럼 쓴다. 일단 생각을 글로 내 뱉는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말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겻을 때 그 문장이 훌륭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초안을 쓸 때는 문장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수정을 시작한다. 긴 문장을 짧게 끊는다. “주어+동사+서술어” 딱 이렇게 단일 구성 요소만 나오게 문장을 자른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수정한다. 의미상 인과를 정확히 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는 없어도 된다.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면 통채로 지운다.

불필요하거나 위치가 이상한 조사(‘을를이가’)를 고친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삭제한다. 이 작업만 해 줘도 문장을 꽤 리듬감있게 만든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기나긴 교육과정 중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계속 수동태 문장을 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수동태를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잘 안되면 문장을 수정한다. 어색한 시제도 수정한다.

기이한 한자어 단어나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한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나도 모르게 쓰는 한자어가 많다. 그리고 그 한자어들은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의’는 우리말에서 없도 문장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엄연한 일본어의 잔재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의’를 없애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조사로 바꾸는게 아니라 문장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

단어 고치기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책 세 권을 썼다. 책 쓰는 동안 출판사 편집자와 문장 고치는 연습을 많이 했다. 그래서 보통 공돌이보단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글을 고치기 전에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쓴다. 마치 말할 때처럼 생각을 글로 내 뱉는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고친다. 긴 문장을 짧게 끊는다. 할 수 있는 한 “주어+동사+서술어"로 문장을 만든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고친다. 앞 뒤 문장을 반드시 연결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는 없어도 된다.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면 통채로 지운다.

불필요하거나 위치가 이상한 조사(‘을를이가’)를 고친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지운다. 이 작업만 해도 문장을 꽤 리듬감있게 만들 수 있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른다. 우리가 평소에 읽는 책이나 글 속에서 계속 수동태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문장을 수동태로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잘 안되면 문장을 고친다. 어색한 시제도 고친다.

이상한 한자어 단어나 꼭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나도 모르게 쓰는 한자어가 많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말 단어로 바꿔 쓸 수 있다.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의’는 우리말에서 없도 문장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 엄연한 일본어의 잔재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의’를 없애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조사로 바꾸는게 아니라 문장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

‘의’ 없애기

내가 딱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책 세 권을 썼다. 책 쓰는 동안 출판사 편집자와 문장 고치는 연습을 많이 했다. 그래서 보통 공돌이보단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글을 고치기 전에는 문장이 좋건 나쁘건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쓴다. 생각나는 대로 쓴다. 마치 말할 때처럼 생각을 글로 내 뱉는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고친다. 긴 문장을 짧게 끊는다. 할 수 있는 한 “주어+동사+서술어"로 문장을 만든다. 문장을 자르면서 어색한 접속사도 고친다. 앞 뒤 문장을 반드시 연결할 필요가 없으면 접속사는 없어도 된다.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면 통채로 지운다.

불필요하거나 위치가 이상한 조사(‘을를이가’)를 고친다. 그리고 의미전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식어를 지운다. 이 작업만 해도 문장을 꽤 리듬감있게 만들 수 있다.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원래 한국말에는 수동태가 없다. 영어의 영향인지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모른다. 우리가 평소에 읽는 책이나 글 속에서 계속 수동태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문장을 수동태로 쓴다. 최대한 찾아서 능동태로 바꾼다. 잘 안되면 문장을 고친다. 어색한 시제도 고친다.

이상한 한자어 단어나 꼭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 단어로 바꾼다. 나도 모르게 쓰는 한자어가 많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말 단어로 바꿔 쓸 수 있다.

되도록이면 ‘의’를 쓰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의’는 없어도 된다. 이건 우리말에 뭍은 일본어 찌꺼기다. ‘의’를 없애는 일은 막상하려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단순히 ‘의’를 쓴 자리에 다른 조사를 쓰는 정도로 문장을 고치기 어렵다. 문장 구조를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쯤 하면 그제서야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